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관이 충돌하고 있다.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1]6일 한낮,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 있는 한인 의류업체 '앰비언스'에 중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들이닥쳤어요. ICE 요원들은 체류 자격을 증명할 서류를 갖추지 못한 중남미 출신 직원 14명에게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린 채 트럭에 태웠어요. 같은 날,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홈디포 주차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 20여 명도 체포됐어요. 비인도적인 구금 과정에다 이들의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가족과 이민자들이 분노해 나흘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어요.

[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연간 불법 이민자 100만 명을 추방하겠다"고 했지만 실행에 속도가 붙지 않자 지난달부터 하루 3000명씩 체포하라고 했어요. 이는 평소의 5배에 달하는 숫자. ICE는 목표량을채우기 위해 불법 이민자가 일할 만한 직장을급습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단속을 하고 있어요.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렬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주 방위군 300명을 투입했어요. "그래도 진정되지 않으면 해병대원 700명을 추가 배치하겠다"라고도 했어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SNS에 올린 사진.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X 캡쳐

[3] LA 한인타운에는 불안함이 감돌고 있어요.1992년,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에게 마구 폭행당했는데도 무죄 판결이 나면서 일어난LA폭동의 기억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LA 폭동 당시 한인 남성이총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루프톱(looftop·옥상)의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 "한인들이 옥상에 오르자 폭동이 멈췄다"고 말했어요.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의 강한 진압을옹호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LA 한인회는 "경솔한 행동"이라는 성명을 내며 비판했어요.

[4] '루프톱 코리안'은 LA 폭동 당시 약탈과 방화로 한인타운이 큰 피해를입자 자발적으로 조직된 한인 자경단을 뜻해요. LA 경찰은 '부자 백인동네'인 베벌리힐스와 할리우드를 방어선으로 삼고 사실상 한인타운은방치했어요. 나중에는 LA 경찰이 한인과 흑인 간 충돌을 방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어요. 한인 자경단은 이를 막기 위해 총을 들고 옥상에 오르면서 "먼저 공격하는 것은 안 돼", "절대 사람한테 쏘지 말자"고 서로 다짐했다고 해요. 이런 비장하고 슬픈 역사가 백인 극우 남성들 사이에서는 종종 '밈(Meme)'으로 소비되면서 유색 인종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도구로 쓰이고 있어요.

[5] LA 폭동 나흘째였던 1992년 5월 2일, 한인 10만 명이 모여 평화 행진을 벌였어요. 당시 자료를 보면, 한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평화(peace)'라고 적힌 흰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장구와 꽹과리를 치면서 "함께 나아가자", "평화를 원한다"고 외쳤다고 해요. 이민자의 서러움을 삼키고 전 재산을 잃은 분노를 녹이며 '화해'를 말하는 이 행진에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했어요. 그 덕분에 LA 폭동은 멈출수 있었고요. 트럼프 주니어가 정말로 소환했어야 했던 장면은 바로 이장면이에요.

동아일보 6월 11일 자 우경임 논설위원 칼럼 정리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